探寻
주역 육십사괘

산수몽

효사 · |#4

괘사

몽은 형통하다. 내가 어린아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나를 구한다. 처음 점을 치면 알려주지만, 두 번 세 번 거듭하면 경솔히 여기니 경솔히 여기면 알려주지 않는다. 바르게 함이 이롭다.

상전

산 아래에서 샘이 나오니 몽이다. 군자는 과단성 있는 행동으로 덕을 기른다.

효사

초육

어리석음을 깨우침은 형벌을 받는 사람을 써서 가르침이 이롭고, 이로써 수갑과 차꼬를 벗게 하나, 이로써 나아가면 궁색해진다.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교육은, 전형이 되는 사람을 써서 사람을 바로잡는 것이 이롭고, 이로써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나, 지나치게 나아가면 어려움이 있다.

구이

어리석음을 포용함이 길하다. 아내를 맞아들이니 길하다. 아들이 집을 잘 다스린다.

어리석은 자를 포용하면 길하다. 아내를 맞아들이면 길하다. 아들이 집을 잘 다스릴 수 있다.

육삼

저 여자를 취하지 말라. 돈 많은 남자를 보면 몸을 돌보지 않으니, 이로울 바가 없다.

이런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지 말라. 돈 많은 남자를 보면 몸을 돌보지 않으니, 이로울 바가 없다. 배움에 있어 이리저리 마음이 변하는 것을 경계한 비유이다.

육사

어리석음에 곤궁하니, 궁색하다.

어리석음에 곤궁하여 처지가 어렵다. 밝은 스승을 멀리하고 고립되어 도움을 받지 못한다.

육오

어린아이 같은 어리석음이니, 길하다.

어린아이처럼 마음을 비운 어리석은 자는 길하다. 겸허하게 가르침을 구하면 길하다.

상구

어리석음을 때려 깨우침은 도적이 되려고 하면 이롭지 않고, 도적을 막으려고 하면 이롭다.

강제적인 방식으로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것은, 폭력적인 방식을 쓰면 이롭지 않고, 방어적인 방식을 쓰면 이롭다.

해석

몽괘는 어리석음과 깨우침을 상징한다. 위의 간괘는 산, 아래의 감괘는 물이니, 산 아래에서 샘물이 흘러나오나 산에 막혀 있는 형상이다. 어리석어 깨우침을 기다리는 형상이다. 몽괘의 핵심은 교육의 도리이다. 가르치는 자가 억지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자가 스스로 구하여야 한다. 한 번 정성껏 점을 치면 알려주지만, 두 번 세 번 경솔히 하면 알려주지 않는다. 이는 '분발하지 않으면 깨우쳐주지 않고, 마음이 막히지 않으면 열어주지 않는다'는 교육 사상을 나타낸다.